창립 선언문
오늘 우리는 일평생 조국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과 민족의 통합을 위해 몸 바치신 항일혁명가 지운(芝雲, 遲耘) 김철수(金錣洙) 선생 기념사업회의 출범을 선언한다.
1910년 제국주의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민중을 노예로 삼아 무자비하게 착취하였다. 또한 반만년에 빛나는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문화와 전통을 파괴하며, 민족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어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였다.
이러한 엄혹한 시기에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일제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하신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계셨다. 김철수 선생은 그러한 항일혁명가들 중에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투쟁가이자 민족의 지도자였다.
그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목숨을 걸고 조선, 일본, 중국, 러시아를 넘나들며 온몸을 바쳐 항일투쟁을 실천하였다. 그리하여 열지동맹, 신아동맹당, 사회혁명당,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조직하여 항일혁명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1925년에 창건된 조선공산당이 신의주 사건 및 6·10만세운동으로 당 지도부가 일제 경찰에 대거 검거됨에 따라 붕괴될 위기에 빠지자, 선생은 당에 가입하고 비밀리에 동지들을 규합하여 당 재건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동안 분열되어 있던 사회주의 항일운동 세력을 단결시켜 마침내 1927년에 통합 조선공산당으로 재건하였다. 그리고 본인은 조선공산당 제3대 책임 비서로서 사선을 넘나들며 위험을 무릅쓰고 모스크바로 가서 국제공산당의 통합 조선공산당 정식 승인 및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을 펼치던 김철수 선생은 결국 1930년에 일경에 체포되어 두 번에 걸쳐 13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겪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언제 시신으로 나올지 모르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지만, 선생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항일투쟁의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마침내 공주 감옥에서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김철수 선생의 특별한 점은 독립운동 지도자로서의 화려한 경력이나 불굴의 투지나 빛나는 활약이나 투옥 경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첫째, 그가 항일투쟁 못지않게 평생에 걸쳐 전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파벌 해소와 민족 통합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은 꺾이지 않는 투지와 헌신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핵심은 바로 고질적인 파벌주의였다. 김철수 선생은 일제강점기 활동기간 내내 임시정부 내 분열, 상해파-이르쿠츠크파 간 대립, 서울상해파-화요파 간 대립, ML파의 문제 등 무수히 많은 파벌주의를 겪으면서, 우리 내부의 파벌주의를 가장 경계하고 반대하며, 언제나 통합의 길을 모색했다. 또한 광복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좌우 대립, 좌익 내 갈등, 남북 분열 상황 속에서 좌우합작과 통합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점은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모범이 된다.
둘째, 그는 본인 스스로 독립운동 및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급 인사였음에도 자신의 경력과 위상을 내세워 조직을 장악하거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늘 대의를 먼저 생각하고, 사심 없이 헌신하며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으나 그처럼 능력과 인품이 모두 뛰어나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은 드물다는 점에서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그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독립운동 및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도 사실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기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탈하게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그를 평생 괴롭힌 것은 바로 함께 투쟁하던 동지를 잃은 안타까움과 슬픔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성품 때문에 다행히도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학살의 회오리바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반공주의 독재로 점철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기를 겪으며 남한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반공 독재 정권조차도 그의 인품 때문에 목숨까지 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김철수 선생은 그의 말년을 예술인,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고인이 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그의 삶과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한 김철수 선생은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 공로를 인정받고 존경받기는커녕 본인은 물론 후손들까지도 반공 독재의 피바람을 맞거나 평생 감시 속에 억눌려 살아야 했다. 이렇게 가치가 전도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선생과 같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그의 삶을 기리고 감사하기는커녕 그가 누구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폄훼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반공 세력은 그의 이름을 적은 비석마저 보기 싫다며 굴착기로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올해는 광복 80년이 되는 해이자, 선생께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의 삶과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있으며 그가 살던 시기에 고민하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 조국은 여전히 분단 상태이고, 최근에는 친일 반공 독재 파시스트 세력의 내란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전복될 뻔한 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우리 사회의 분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어 이념과 계급과 지역과 세대와 성별 간의 반목과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오늘 김철수기념사업회를 창립하며 다음의 내용을 실천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1, 우리는 김철수 선생의 고귀한 삶과 뜻을 되새기고 이어받아 우리 삶에 실천한다. (자기 혁명)
2.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우리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재조명하여 기존의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동 세대 및 후속 세대에게 알리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3.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꿈꾸었던 조국 독립, 민중 해방, 사회 혁명, 민족 통합의 가치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사회 변혁)
2025년 10월 16일
김철수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