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 시인의 시향기 퍼지는 뜰안
- 입력 2025.10.21 15:07
- 수정 2025.10.21 15:08
[김철수기념사업회 창립총회]
“광복60주년에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지난 10월 16일 목요일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김철수기념사업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창립총회는 김철수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9만이고,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된 지 19년 만이다. 이날 지운 선생의 후손 박구일씨를 비롯하여 6명이 참석했다. 집행부 및 임원을 포함하여 각계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풍물마당 비나리 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그 문을 열었다.축사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 반병률 명예교수는 김철수 선생 전기 집필의 책임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반병률 교수는 “그는 공산주의자로서 누구보다도 민족통합을 추구했다.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 중에서 지운 선생처럼 민족운동 전선에서 좌우통합, 파벌해소를 몸소 실천한 이는 많지 않다”며 선생이 평생 추구해 온 통합 정신을 강조했다. 또 “사회주의 항일운동가로서 지운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품었던 꿈은 자주독립과 민족통일국가 수립이었다”며 “오늘날 자주독립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운 선생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항일혁명운동 역사에서 공통의 정신사적 근거와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기념사업회가 많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창립총회는 지난 7월 14일 발기인 회의를 비롯하여 수차례 창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총회가 이루어졌다. 창립총회에서 정관승인과 창립선언문 채택되어 임원이 선출되었다. 이사장으로는 최동칠, 부이사장은 정재철 (부안역사문화연구소장), 황선건( 6.10만세유족회장), 상임이사는 이용범 (전 백산고등학교 교장)이 각각 선출되었다.
또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천할 것을 밝혔다.
1. 우리는 김철수 선생의 고귀한 삶과 뜻을 새기고 이어받아 우리 삶에 실천한다. (자기 혁명)
2.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우리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재조명하며 기존의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고, 이를 동 세대 및 후속 세대에게 알리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3.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꿈꾸었던 조국 독립, 민중 해방, 사회 혁명, 민족 통합의 가치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실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사회 변혁)
< 강민숙 시인, 지운 선생 추모시 낭송>
이날 김철수 선생를 추모하기 위해 쓴 시 <은유의 편지, 꽃나무 할아버지>를 강민숙 시인이 2편을 낭송 했다.
<꽃나무 할아버지>
이안실 앞에서 2
강민숙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더 이상 꿈이 없어
이름을 지워 버렸습니다
지워 버린 이름 위에
꽃나무 한 그루 심었습니다
이제는 꽃나무가 내 이름입니다
가방에 꽃나무
몇 그루 넣어가지고
이 집 저 집 들러
내 이름을 나누어 줍니다
꿈이 없어도
꽃나무에 꽃이 피면
내 이름도 피어날 것이라 믿으며
꽃나무를 심어 주러 다닙니다
바람 속에서 피는 꽃을.
<은유의 편지>
-이안실 앞에서1
강민숙
백산 대수리에 가면
토담을 두른 우거 한 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의 독립
이루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며
얼기설기 지은 집 마당 앞
매화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친구처럼 지낸 지운 선생
독립운동 하는데
이념의 색깔이 무슨 문제냐며
독립만을 외치며
부끄러움 없이 사신 당신
매화가 피면 함께 보자던
그 깊은 은유의 편지
꽃이 좋아, 늘 꽃을 들고 다니시던
지운 선생님 지금은
풀벌레 소리로
백비(白碑) 뒤
조용히 누워 계시네.
지운 김철수 선생은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출생한 지운 김철수 선생(1893~1986)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 1947년까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최일선에서 독립과 민족통합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에서 활동했고, 조선노동당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1945년 광복 후 사회주의 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좌익과 우익이 극심하게 세력다툼을 하며 통합정부 수립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환멸, 1947년 고향 백산으로 낙향했다.백산면 원천리에 생가가 있었지만, 낙향 후 1968년 대수리 야산에 직접 토담집(이안실, 易安室)을 짓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일생을 살았다. 이승만 정부 이래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는 공안당국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광복60주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 임원 및 집행부>
앞으로 기념사업회는 이달에 보훈부에 사단법인 설립 인가 신청하고 11월 말까지 법인등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어, 지운 김철수 선생 역사 답사를 26년도는 자료조사 및 수집, 학술 및 출판사업, 주요 유적지 표식작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천할 것을 밝혔다.
1. 우리는 김철수 선생의 고귀한 삶과 뜻을 새기고 이어받아 우리 삶에 실천한다. (자기 혁명)
2.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우리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재조명하며 기존의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고, 이를 동 세대 및 후속 세대에게 알리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3. 우리는 김철수 선생이 꿈꾸었던 조국 독립, 민중 해방, 사회 혁명, 민족 통합의 가치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실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사회 변혁)
< 강민숙 시인, 지운 선생 추모시 낭송>
이날 김철수 선생를 추모하기 위해 쓴 시 <은유의 편지, 꽃나무 할아버지>를 강민숙 시인이 2편을 낭송 했다.
<꽃나무 할아버지>
이안실 앞에서 2
강민숙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더 이상 꿈이 없어
이름을 지워 버렸습니다
지워 버린 이름 위에
꽃나무 한 그루 심었습니다
이제는 꽃나무가 내 이름입니다
가방에 꽃나무
몇 그루 넣어가지고
이 집 저 집 들러
내 이름을 나누어 줍니다
꿈이 없어도
꽃나무에 꽃이 피면
내 이름도 피어날 것이라 믿으며
꽃나무를 심어 주러 다닙니다
바람 속에서 피는 꽃을.
<은유의 편지>
-이안실 앞에서1
강민숙
백산 대수리에 가면
토담을 두른 우거 한 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의 독립
이루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며
얼기설기 지은 집 마당 앞
매화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친구처럼 지낸 지운 선생
독립운동 하는데
이념의 색깔이 무슨 문제냐며
독립만을 외치며
부끄러움 없이 사신 당신
매화가 피면 함께 보자던
그 깊은 은유의 편지
꽃이 좋아, 늘 꽃을 들고 다니시던
지운 선생님 지금은
풀벌레 소리로
백비(白碑) 뒤
조용히 누워 계시네.
지운 김철수 선생은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출생한 지운 김철수 선생(1893~1986)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 1947년까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최일선에서 독립과 민족통합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에서 활동했고, 조선노동당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1945년 광복 후 사회주의 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좌익과 우익이 극심하게 세력다툼을 하며 통합정부 수립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환멸, 1947년 고향 백산으로 낙향했다.백산면 원천리에 생가가 있었지만, 낙향 후 1968년 대수리 야산에 직접 토담집(이안실, 易安室)을 짓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일생을 살았다. 이승만 정부 이래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는 공안당국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광복60주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앞으로 기념사업회는 이달에 보훈부에 사단법인 설립 인가 신청하고 11월 말까지 법인등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어, 지운 김철수 선생 역사 답사를 26년도는 자료조사 및 수집, 학술 및 출판사업, 주요 유적지 표식작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창립총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출처 : e-빠른뉴스(e-fastnews)(http://www.e-fas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