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해설문
○ 명제: 恕乎(서호) - 날 용서하시겠는가!
○ 작가: 심석(心石) 김병기(金炳基) - 서예가 전북대 명예교수
○ 크기: 가로 75cm × 세로 140cm
□ 해설(작가의 설명):
지운 김철수 선생께서는 1968년 이후, 전북 부안군 백산면 대수리(현 주소는 백산면 하청리 수성부락)에 손수 지으신 토담집 이안실(易安室)에 거처하셨는데, ‘恕乎’ 두 글자를 벽에 써 붙여 놓고서 매일 바라보시곤 하셨다고 한다. 1986년 2월 7일 선생께서 서거하신 후, 부안인 달마도의 화가 소공(簫笠) 이명우(李明雨) 선생이 수거하여 소장하고 있었으나, 소공이 작고한 후 이 글씨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지운 선생께서는 왜 ‘恕乎’ 두 글자를 써 붙여 놓고서 매일 바라보셨을까? 정진백 선생은 『한국산문』 2021년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재일우일까? 김철수 선생은 1923년 1월부터 5월까지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애국부인회 대표로 참석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선생을 만났다. 김마리아 선생은 3·1독립운동 후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경무총감부와 일경(日警)으로부터 갖은 악형과 혹독한 고문을 받아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1921년 동지들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상해로 망명한 것이다. 김마리아 선생은 김철수 선생을 사모했다. 주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운 선생은 ‘이미 가정이 있다.’며 극치의 예(禮)로 사양했다. 애석하게도 김마리아 선생은 1944년 3월 13일 고문 후유증이 재발하여 평양기독병원에서 순국했다. 이후, 지운 선생은 ‘하도 미안해서 김마리아 선생을 그리워하며 평생 사진을 품고 다닌다.’며 지음(知音)들에게 종종 보여주셨다. 그리고 책상 앞에 ‘恕乎’ 두 글자를 휘호하여 걸어놓고 용서를 빌었다.”
정진백 선생(김대중추모사업회 회장)의 글을 읽은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지고한 사랑과 지강(至剛)한 절개 앞에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恕乎! “그대, 나를 용서하시겠는가?” 지운 선생은 매일 김마리아 선생을 향해 그렇게 물으신 것이다. 나는 지운 선생님의 진정한 정감과 절개와 사랑을 배우고자 선생님의 뜻을 기리며 이 두 글자를 휘호해 보았다. 선생님 글씨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생님을 향한 존경의 마음만 가슴에 가득 차오른다.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글)
※ 이 작품은 지운 김철수 선생 서거 40주기 추모 행사로 2026년 3월 16~22일 까지 광주 전일245빌딩 4층에 전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