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에게 봄입니다
봄입니다.
마음이 꽃보다 먼저 피는 봄입니다.
의상봉에서 흐르는 물은
내변산 골짜기를 지나
서해로 흘러갑니다.
봄 소식을 싣고 갑니다.
꽃 한 송이 들고 갑니다.
숨 막히던 시대
당신은 우리에게
봄이었습니다.
꽃이었습니다.
평생을 지조 있게 살았던 당신.
청빈과 겸손으로 살았던 당신.
일제 강점기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을 외쳤던 당신.
블라디보스톡에서 돈화까지
구백육십리 눈보라 길,
뼛속까지 시린 길을 헤쳐
조국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당신.
13년 8개월의 감옥.
쇠창살 안에서도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던 당신.
서대문의 어둠을 견디고
공주의 감옥을 지나
마침내 해방의 종이 울리던 날.
하지만 기쁨은 잠시,
갈등과 대립 속에
조국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민족의 통합을 외쳤던 당신,
아픔을 안은 채
고향 백산으로 내려옵니다.
통일의 하늘을 바라보며
끝나지 않은 싸움을
마음에 품었던 당신.
일제 때는 감옥이었고
해방 후에는
지옥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방 한 칸 토담집
이안실에 살며
“이 정도면 편안하다.”
웃던 분이었습니다.
우리 땅 독도를 바라보며
울릉도에 진달래를 심고
종달새 한 쌍을 날려 보내던 분.
단종의 영혼이 깃들었다는
두견이 소리를 듣기 위해
밤배로 청령포를 찾던 분.
사람들이 찾아오면
조용히 붓을 들어
글씨를 써 주던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봄이었습니다.
꽃이었습니다.
올해도 봄은 왔습니다.
조국 통일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꽃에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당신이 남기신 것은
오두막집 한 칸이 아니라
조국 통일이라는
큰 꿈 한 채였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마흔 해가 되는 날입니다.
뵌 적도 없는 당신.
말로만 듣던 당신.
당신의 뜻을 기리고
그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봄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16일 김철수 선생 40주기 추모식에서 이용범 시인/상임이사 추모 시 낭독>
이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