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면 돈지에는 소녀 적에 시와 노래를 좋아하던 용화 할매가 산다. 피붙이 하나 없이 혼자 산다. 독립운동가 김철수 선생(1893~1986)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부안군 백산면 출신에 김철수라는 이름 있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다. 일제 때는 13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를 만큼 불굴의 독립투쟁을 펼쳤다. 해방 후 월북하지도 않았고, 북한 정권 수립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껴 1947년 모든 활동을 접고 낙향, 사람 사귀고 붓글씨 쓰며 여생을 보냈다. 친북 활동의 전력이 없었음에도 독립운동 방법으로 택한 사회주의 때문에 타계할 때까지 1급 감시 대상으로 한평생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유명을 달리한 지 19년, 해방 60년 만인 2005년에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복권으로 해석된다.

 

삼성약방을 경영하다

용화 할머니는 1961년부터 돈지에 살면서 약방을 경영했다. 언니가 남긴 다섯 조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70년대 식 새마을 간판에 '삼성약방'이라는 희미한 글자가 남아 있다. 약방 폐업 신고를 낸지 오래지만 약장이 그대로이고 작은방 두 개, 아버지가 만든 꽃밭의 나무들은 관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세 평 되는 방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방문 때 찍은 사진이 빛바랜 채로 붙어 있다. 할머니는 기억력이 좋아서 지난 가족사를 자세히 얘기하고 국제 정세까지를 말할 때는 고운 얼굴에 홍조를 띤다.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 한 아버지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는 감시를 받으며 험한 때를 보냈지만 어느 때 부턴가 세상이 달라졌다며 삶의 의지도 강해졌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는 역사의 진보를 위해 자양분이 된 혁명가로 이해한다.

 

용화 할매는 93세

추석 전날 돈지의 용화 할머니를 찾는다. 평소에는 가지 못하다가 명절 즈음에 한 번씩 가자니 모든 것이 낯설다. 게으른 탓이다. 15년 전 처음 찾았던 그 집 그대로 달라진 것은 없다. 뭐라도 사들고 가면 말씀도 항시 재밌게 하신다. “내가 이것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당가.” 이번에는, “내가 이 동네 사람 누구도 못한 것을 할 것”이라며 웃는다. 100살을 넘겨 살겠다는 것이다. 1919년생으로 현재는 집 나이로 93세이니 몇 년이라도 맘 편히 사시기를 빈다.

가게 유리문 앞에 선 나이 든 여인과 그 뒤에 함께 선 남녀가 웃고 있는 사진
용화 할머니와 박구일 조카 부부

밖으로 나서자 가랑비는 맞을 만 하게 내린다. 용화 할머니는 손님 가는 것 봐야겠다며 문을 열고 쳐다보신다. 명절이라 다니러 온 조카 부부도 따라 나선다. 행복하시라고 마음으로 빌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부안독립신문』, 「길에서 만나는 부안」-201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