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은 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까? 몰라서 묻느냐고 반문한다면, 말 길을 잃는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모른 척, 못 본 척 지나친지가 해방 후 오랜 세월이다. 가족들이 여린 몸으로 온갖 질곡을 다 겪은 후에 선조가 독립유공자가 된들 겪었던 그 고통의 세월이 치유될 수 있을까? 남의 불행을 못 본 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억울함을 폄하하고 역사의 사실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세상이라면 희망을 꺼낸다는 사실조차 부끄럽고 사치이다.

 

김금남의 큰 딸, 박수성

 

독립운동가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 1893~1986)의 후손들은 불행했다. 취직이 안 되는 것은 물론, 공안의 감시는 치밀했다. 먹고 사는 경제 활동을 못 하게 한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독립운동가의 2세들에게는 ‘추억이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돌아가시거나 해방 이후에도 사상 문제로 쫓겨 다니기 일쑤였다. 자녀들은 “순사 온다”는 말에 위축이 되고 도망하여 숨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지운의 후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수성(朴水星, 1936~2021)은 독립운동가 김금남(金錦男)의 3남 2녀 중 큰딸이니, 김철수의 외손이다. 지운의 후손 중에는 박수성이 할아버지를 지극히 존경하고 그 정신을 닮으려고 했으며 이모인 용화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금남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금남은 자녀들을 원천리의 외가에 맡기고 경제 활동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병을 얻어 1954년 40대 중반에 유명을 달리한다.

 

고등학교는 졸업시킬텐게

 

금남은 병상을 지키던 동생 용화에게 자녀들을 부탁하자, 용화는 “성(언니), 걱정 말어요. 대학은 몰라도 고등학교는 졸업 시킬텐게.” 언니가 유명을 달리하자 용화는 곧 후회를 했다. “어찌든지 대학까지는 가르친다”고 말할 걸 그랬어. 큰 딸 수성은 영양실조로 폐결핵에 걸렸고 치료가 안 돼서 장결핵까지 갔다. 당시 지운의 동생 창수씨가 국회의원으로 농림분과위원이었으니 부탁만 한다면 얼마든지 마산결핵요양소라도 갈 수 있으련만, 그는 동생에게 가족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수성은 군산의료원에서 치료를 계속했다.

초가를 등지고 양복 차림의 남자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나란히 선 흑백 사진
하남필과 박수성의 결혼-1960년 10월

수성이 건강을 회복하자 처녀 귀신은 면해야 한다며 결혼을 진행했다. 마침 정읍군 영원면의 영원국민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하남필(河南弼, 1931~2022)과 중매가 들어오자, ‘교사이면 밥은 먹여 살리겠구나’ 하고 결혼을 성사시켰다. 결혼식은 가까운 절에서 했고 신부는 신랑에게 만년필을 결혼 예물로 선사했다. 이들은 2남 1녀를 낳고 일산에서 살다가 수성은 딸 하자성(河慈成)이 사는 군산으로 2006년에 내려온다.

수성은 “가슴 속이 꾸물꾸물하다.”고 말하곤 했다. 마음에 있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이 서툴러서 어렵다고 하면서, 집 뒤에 있는 초등학교라도 다니면서 학생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침 군산의 예술촌 사람들을 만나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쓴 시를 딸 자성의 권유로 2020년에 『세월 담은 뒤뜰에서』라는 제목으로 엮어냈다.

세월 담은 뒤뜰에서

 

시집(詩集) 머리말에 수성은 “내 나이 80 중반에 이르러 삶에 있어서 그리운 게 하도 많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자신이 겪은 세상과 가족사를 증언으로 남기지 않고 시어(詩語)에 담아 독자의 해석 영역으로 남겨 놓았다. 시집 가운데 3부 ‘학교 가는 길’은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 외갓집에 살면서 동진강을 배로 건너서 화호국민학교를 다녔던 기억을 담았다. 4부 ‘할아버지 정원’은 지운 할아버지가 원천리 집에 가꾼 정원에 대한 기억이다. 마지막 5부는 ‘그리운 어머니’인데 어머니와 용화 이모의 모습이 섞여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어머니는 전사처럼 활동하느라 수성과 애틋한 정을 나눌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빈 공간을 이모가 엄마의 온기로 보듬고 쓰다듬어 주었다.

시 세 편을 소개한다.

 

「할아버지 정원」

 

사잇문 열면

할아버지 그 안에 늘 계셨는데요

 

장미 꽃길에

노란 꽃 핀

넝쿨은 뒤엉켜 있고

 

동산에 작은 숲속

꾀꼬리 소리

찾아온 자리

 

가는 구름 머무는

작은 연못

할아버지가 가꾸신 정원이었어요

 

지운은 사는 곳에 정원을 늘 만들었다. 원천리 집과 대수리의 이안실, 딸 용화가 살던 돈지의 삼성약방의 뒤뜰에도 꽃밭을 가꾸었다. 이 정원에는 꾀꼬리 등 새들도 깃들고 노래했다.

벚꽃 가지 아래 '세월 담은 뒤뜰에서'와 '박수성 시집'이 적힌 검은 책 표지
박수성 시집

「어머니」

 

고운 모습 어머니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어제는 지난날

즐기시더니

 

오늘은

나 몰라라 하셨는데

 

어찌하겠습니까 어머니

먼 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시의 ‘어머니’는 수성의 어머니로 보이지만, 이모인 김용화를 가리킨다. 용화 이모가 군산에 오셨는데, 치매로 옛 기억을 많이 잃어버리고 창 밖만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지은 시라고 한다. 수성에게 어머니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 자리에 이모가 등대처럼 함께 함이 얼마나 다행인가. 용화 이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슬하에 자녀도 없었다. 조카 다섯을 언니의 유언에 기대어 자기 자녀처럼 키웠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의 꿈

조금은 알지요

 

그 꿈

어찌 다 말하겠어요

 

그 흔적 지워져 가고

어머니 모습 흐려집니다

 

내 어려 가신 어머니

그리운 내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시다. 그에게 어머니는 부르기 쉬운 두 마디의 엄마나  다른 시에 보이는 엄니로 남지 않고 큰 꿈을 가진 여장부로 남아 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는 수성에게 상처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꿈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어머니의 꿈을 어디에 다 말할 수 없는 한계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운 어머니는 나라를 위해 자양분이 되고자 몸을 던진 분이라 이해하면서 그리움을 다시 숨긴다. 그러나, 여전히 어머니는 그립다.

수성은 시집을 낸 다음 해 정월 보름날에 어머니를 따라 여행길을 떠났다. 가슴 속에 꿈틀대던 것을 다 털어놓지 못하고 지상에 시집 한 권을 떨구었다.